나의 이야기

[스크랩] 축제 (祝祭, Festival), 임권택 / 金秀哲1996│두번째 국악 O.S.T째

대칸 2009. 12. 28. 11:09

축제 Festival / O.S.T
축제 (O.S.T) 1995
김수철 金秀哲 / Kim, Soo-Chul 1957-
Track 전곡연주
 
홈페이지 :http://www.kimsoochul.com/
출생 : 1957년 04월 07일 / 한국
취미 : 영화감상
특기 : 작곡, 편곡, 기타연주
학력
-서울 용산공업고등학교
-광운공과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1. 축제1 - 피리,대금 (4:09)
2. 꽃의 동화1 - 소금 (3:32)
3. 어머니1 - 피리 (4:21)
4. 꽃상여 - 만가 (5:49)
5. 꽃의 동화2 - 소금,대금,가야금 (3:42)
6. 먼길 - 아쟁 (4:02)
7. 축제2 - 피리,대금 (4:09)
8. 어머니2 (4:21)
축제 "Festival"
임권택 감독 연출 영화 「축제」의 영화음악 앨범이다. 삶과 죽음 그리고 남은 이들의 향연... 「축제」는 장례식을 배경으로 하여 죽은사람과 살아가는 사람,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의 슬픔과 이기심, 엄숙함과 부박함을 특이한 형식으로 그려낸 영화이다. 주제음악인 ‘꽃의 동화’는 소금곡으로 국악동요 형태로 작곡되었다. 영화 맨끝부분의 축제음악은 국악기와 오케스트라의 조화가 매우 웅장하면서도 정교하다. 그외에 아쟁곡, 피리곡, 변주된 피리·대금곡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94. 28th Album,
Titled "Festival" Festival is the soundtrack album of the film by the same name. This film tells the story of a typical Korean family that has been brought together by the death of their grandmother. The history of the family unfolds as the characters make the complicated preparations for a traditional Korean funeral. The participants experience a wide range of emotions potently expressed by the powerful soundtrack. As usual, Kim uses a combination of Western and Korean instruments to help tell this bittersweet story of the human condition.
     

 

축제 "Festival" 내용
40대 명망있는 작가 이준섭은 5년이 넘게 치매를 앓아온 시골노모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분주히 고향을 찾는다. 87세 할머니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른 감정으로 다가간다. 특히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셔온 형수의 감정은 홀가분함과 애석함이 교차한다. 한편, 준섭의 모친상을 통해 그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하는 기사를 쓰러온 기자 장혜림은 관찰자로 장례식의 이모저모를 취재하기 바쁘다. 장례가 시작되고, 어머니의 죽음을 놓고 생기던 그 골이 깊어진다. 그러나 장례식이 진행되면서 가족들의 갈등은 서서히 풀리고, 할머니를 모시지 않은 삼촌 준섭을 원망하던 용순은 준섭이 쓴 동화를 읽고 눈물을 흘린다. 장례가 끝나자 노모가 남겨준 큰 사랑과 삶의 지혜를 가족들은 각자의 가슴속에 간직하게 된다.
 
■ 한국적 풍속에 대한 높은 기록성(호현찬)
▲ 임권택 영화의 인정받지 못한 새로운 경지(김영진)
이 영화는 지금까지 거장 임권택의 소품 정도로 인식되어 왔다. 어느 면에서는 그러한 인식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80년대 이후 임권택이 가져왔던 높은 깨달음의 경지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민족적 비극에 대한 미시 혹은 거시적인 고찰, 한국적 전통에 대한 긍정과 비판을 충돌시키고 그 속에서 남아있는 어떤 것을 길어올리는 독특한 영화세계가 이 영화에서는 도드라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보기에 따라서 한국 전통문화인 효에 대한 다소간 감상적인 감독의 인상이 전면에 부각되는 영화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리고 여성(어머니)과 고향 혹은 역사를 등치시키는 임권택만의 방식은 젊은 비평적 시각에서는 불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소품이라서 가지는 강점이 있다. 큰 이야기에서는 감행될 수 없는 아기자기한 실험이 이 영화에서는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서사적인 면에서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실험되고 그것은 현실과 동화적 세계의 윤리를 길항시킴으로써 주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그 단순성을 다소간 완화하는 구실을 한다. 형식적인 면에서 외화면과 내화면을 오가는 화편화 방식은 임권택이 이전부터 즐겨 써오던 것이지만, 양적으로 풍성하고 한층 활발해졌으며, 거기에 화면이 깊이가 더해진다. 장례식의 떠들썩한 풍경이 표층과 중층 심층의 다양한 깊이의 사람들의 움직임을 통해 재현되는 것은, 일반적인 영화문법에서 특이한 것은 아니지만 임권택의 영화 세계에서는 새로운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형식적 실험은 한국식 장례문화의 축제적 분위기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는 비교적 분명하고 간결하다. 그것이 나이브하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동화 속의 할머니처럼, 그는 스스로 한국민들에게 지혜를 나누어주는 현인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임권택의 영화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 요컨대 객관적인 현실과 역사 혹은 형이상학에 대한 영화적 관심이 이제 내면화되는 시기로 접어드는 시점에 속한 영화이다. 물론 <창>이라는 다소 불분명한 주제의 영화가 있었지만, 이후 그의 영화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돌아보고, 스스로의 영화세계 혹은 개인사에 스스로 주석을 다는 방식으로 변해간다.
     

 

축제 "Festival"
축제 (祝祭, 1996)
임권택 감독의 영화는 참 재미가 없다. 물론 아주 견딜 수 없는 수준의 형편없는 영화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좀 심심해서 보는 와중에 여러번 몸을 이리꼬고 저리꼬고 해야한다는 뜻이다. 감독 자신의 어떤 주장이 담겨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눈에 확 들어오는 독특한 스타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늘 "축제"를 보면서도 심심했다. 박철수의 "학생부군신위"가 보여주는 재미와 작가의 색깔과 비교된 탓도 있지만, 전에 보아온 임권택의 다른 작품들을 떠올리자면 그 심심함은 근거가 빈약하지만도 않다.
"축제"를 함께 본 이들과 임권택의 영화에 대해, 그리고 그의 영화들이 보여주고 있다는 소위 '한국적인 것'이 뭘 말하는 건지 이야기해 보았다. 한국영화를 함께 보고 또 함께 생각해 보기로 모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 나름대로 임권택의 영화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명감독으로 임권택을 추켜 세워주기에 대한 논의는 별도로 하고, 확실히 그의 영화들은 다른 감독의 것들과는 차별되는 특성을 지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에겐 다른 지식인 감독들이 갖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컬러 필터'가 없다. 나름의 색을 가진 선글라스를 쓰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무색투명한, 그러나 그 재질은 임권택의 개인사로 만들어진, 그런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다시 그려낸 세상은 별 두드러지는 점이 없는 한폭 그림이 되고 만다. 그의 영화를 보고 나서 어떤 감동이나 심정적 변화를 체험하게 되기 보다는 심심한 공감을 느끼고 오는 일이 많다는 점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 오는 것 같다. 한마디로 임권택의 영화는 한국인의 절대 다수의 삶을 반영하는, 그래서 그런지 별 특기할 만한 사항이 없어보이는 작품들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같은 장례식을 소재로 한 박철수의 "학생부군신위"에 비할때 "축제"는 솔직히 재미가 없다. 아니, 다른 여러 영화들과 비교해도 "축제"는 관객으로서 내가 기대하는 바에 미치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얼마전에 보았던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의 대사처리나 96년 최신작 "축제"에서의 대사처리나, 내 귀엔 어색하기가 매일반이다. 최근 젊은 감독들의 영화들과 "학생부군신위"에서만 해도 이런 점은 거의 느낄 수가 없었는데, 임권택 감독의 영화는 확실히 나보다 이전 세대를 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오발탄"에서의 딕션들이 당대에 별 어색함없이 받아 들여졌으리라 예상하고, 또 나의 부모 세대들은 "축제"를 보면서 아무런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사실과 맞물려, 지금 내게 자연스럽게 들리고 있는 영화들이 내 이후의 세대들 귀에는 어색하지 않게 들리리란 보장이 없다.
안성기의 연기에 대해 푸념을 좀 늘어 놓고 싶다. 왜 그리도 연기를 못하는건가? 도무지 어색해서 못봐줄 지경이다. 다른 연기자들도 딱 떨어지는 맛이 없긴 매한가지였지만, 안성기는 정말 갈 수록 가관이다. 그의 이상야릇한 억양과 들리지도 않는 발음은 물론이고, 건들건들 뒷짐지고 서있는 모양새가 눈에 너무 거슬린다. 이것조차 감독의 의도한 바였다는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고 싶어도, 역시 나로서는 임권택 영화의 어수룩한 분위기였으니까 그나마 살아남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먼 훗날 안성기의 전기영화가 혹시나 만들어진다면 그 배역을 맡을 배우는 그가 영화 연기에서 보여주던 몇가지 특징만 잘 살려낸다면 아주 쉽게 카피해 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축제"의 결말은 아무런 의도성도 느끼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다. 영화가 내내 그렇기도 하지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화목한 결말이다. 바로 피를 나눈 가족들간의 화해, 이것이 "축제"라는 영화에서 내가 이끌어 낼 수 있는 주제의식이다. "학생부군신위"에서 결핍되었던 부분이 이것이다. 물론 임권택 감독이 "축제"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바가 좀 다른 부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나의 이끌어 냄은 상당히 의도적이고 주관적인 것이 된다.
     
김수철 金秀哲 / Kim, Soo-Chul
한국가요계의 진정한 뮤지션 김수철, 그는 1978년 광운대학교 재학시절 '작은 거인'을 결성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파워플한 목소리와 시대의 조류를 읽는 그의 눈은 보컬은 물론이거니와 작곡, 작사에서도 그 빛을 발하면서 자신 스스로를 국내 가요계의 당당한 샛별로 등장한다.
대학시절 발표한 ‘작은 거인’의 음반은 특별한 홍보도 없이 조용히 대학가와 당시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다운타운 음악다방으로 조용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일곱 빛깔 무지개”는 그 당시의 상당한 히트곡. 이후 솔로로 전향한 그는 “못 다 핀 꽃 한송이”, “내일”, “별리” 등을 발표하면서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인기는 물론이거니와 음악적으로도 서서히 인정 받기 시작한다. 이런 1984년부터 86년까지 그의 작품 활동은 각종 방송국의 챠트를 휩쓰는 최고의 인기를 보여줌은 물론이고 음악적 성과 역시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물론 그 사이에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영화 <고래사냥> 작업은 김수철에게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작업 중 하나. 영화 음악 데뷔작인 <고래사냥>은 준비기간이 겨우 3일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15곡을 만들어야 하는 여건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발표된 음악은 당시 영화의 인기만큼이나 각광 받는 음악으로 남았으며 그의 천재성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로 남아있다. <고래사냥>은 음악을 맡음과 동시에 함께 출연까지 해, 연기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는 계기를 주기도 했다. 영화 <고래사냥>의 음악작업은 그에게 있어 김수철 개인의 영화음악사를 따로 쓰게 할 만큼 많은 영화음악 활동의 시작임을 알리는 작업의 시작이 된다. 이런 영화 속의 음악 역시 그의 개성을 아낌없이 보여주며. '국악을 중심으로 한 양악의 조화'라는 그의 장기는 영화와 맞물려 그 진가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이련 일련의 음악활동과 함께 1986년 아시안 게임 휘날레 음악, 1988년 올림픽 게임 전야제 음악 등 행사를 위한 창작곡을 맡아 세계속에 우리 음악을 담는데 주력했으며, 방송 타이틀 음악, 시그널 음악 등, 음악에 관한 장르를 나누기가 힘들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각종 KBS 미니시리즈 '형'의 타이틀 음악, 영화 <서편제> <태백산맥> 등의 음악을 통해 그의 깊이를 표현하는 우리 음악의 진수는 영화를 더욱 빛내면서 그의 이름을 우리 문화 전반에 침투시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런 우리 음악의 세계화를 느낄 수 있는 일련의 과정은 급기야 1997년에는 이런 그의 진가를 대내외적으로 평가를 받는 결실이라도 되는 듯 그만의 체취가 느껴지는 앨범 ‘팔만대장경’을 발표하기에 이르게 된다. 이 시기 김수철의 활동은 장르파괴에 음악적 자기정신의 확립이라는 놀라운 음악적 성숙과 함께 많은 음악인들과 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이는 가요 속에서 우리 음률을 느끼게 한다는 것인데 그가 보여준 이러한 노력과 성과는 여느 국악을 연구하는 학자보다 못하다 할 수 없는 최고의 경지임을 알게한다.
결혼 이후 더욱 안정된 음악적 성숙을 보여주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김수철은 어느 부분에 국한된 음악활동을 뛰어 넘어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고 있으며, 이런 그의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은 한국가요계에 찾아보기 힘든 독자성과 힘을 느끼게 한다. 손에 꼽기가 힘이 드는 다작 속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찾기 위해 고뇌하고 노력하는 그의 음악은 가수라는 칭호보다 뮤지션이라는 칭호를 자연스럽게 불러올 만큼 위대하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김수철은 진정 우리 가요계의 거인으로 불릴만한 가수이자 음악인 임에 틀림이 없다.
     

 

붓펜으로 그린 이미지 출처 : 멀리 있는 빛
     
     
     

4. 꽃상여 - 만가 Flower Funeral (Elegy 5:49)

     

 

 

 

 

http://www.catholic.or.kr/

출처 : 언제나 처음처럼
글쓴이 : 자유로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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