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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그 아품을 잊지말자 .대칸

대칸 2008. 6. 26. 11:26

제목:그날의 그 아품을 잊지 말자..대칸

 

고요한 백의민족

동방의 촛불 대한민국

 

달콤한 휴일아침

적막을 깨고 들려오는 포소리

 

꿈인가 생시인가

아비규환속에 밀리고 밀리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남으로 남으로 낙동강까지

 

현흔이 마르기전 북진하여

압록강에 태극기 휘날리며

 

통일 조국 보이는듯

중공군 개입으로

 

정전 휴전협정

민족의 비극 삼팔선

 

수백만 내형제

저세상으로 보내고

 

아름다운 조국강산 지켜온날

70년 세월이 흘렀것만

 

아직도 영령들이 염원하던

통일은 요원한 세계유일 분단국

 

공산주의가 무었이며

민주주의가 무었이더냐

 

꽃다운 님들의 고귀한 희생

그 넋을 어히할꼬

 

그날의 그 아품 잊지않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모두 합심하여

한 마음 한뜻으로 통일조국

 

아름다운 금수강산

후손에게 물려주세

.625 노래

보훈의달을 맞이하여 애국선열들 넋을 기립니다.

2016년 백두산 천지 라이딩 당시 압록당 철교에서

압록강 철교를 배경으로

               6.25-1950년 6월 25일~1953년7월29일까지




폭파된 한강철료 피난행렬

 

▲ 1950. 7. 27.주객전도, 이 땅의 주인인 갓을 쓴 노인들은 전차를 피해 갓길로 가고 있다.


▲ 1950. 7. 27. 맨발의 한 소년이 지게에다 피난봇짐을 잔뜩 지고 있지만 표정이 매우 맑다.


▲ 1950. 7. 29. 안동군민들의 피난 행렬.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


▲ 1950. 7. 29. "뜨거운 전우애" 한 병사가 부상당한 전우를 업어가고 있다


▲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1950. 7. 29. 야간 전투 후 주간 취침.

▲ 1950. 7. 29. 주야간 전투에 지친 국군 병사들이 아무데서나 쓰러져 자고 있다.

▲ 1950. 7. 29. 취침 후 병기 손질


▲ 1950. 7. 29. 경남 진주 부근에서 생포한 빨치산(?)



6.25-4:1950년 8월 2일부터 8월 18일까지

▲ 1950. 8. 2. 금강철교


▲ 1950. 8. 3. 뙤약볕 속에 전선으로 가는 국군 행렬


▲ 1950. 8. 3. 한국전쟁 무렵의 부산항, 멀리 영도가 환히 보인다.


▲ 1950. 8. 4. 피난민들의 보금자리 산동네 판자촌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


▲ 1950. 8. 9. 임시 포로수용소


▲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


▲ 1950. 8. 10. 핫바지들을 인솔하는 미 해병대.


▲ 1950. 8. 18. 포로들이 줄을 서서 밥을 타고 있다

6.25-1: 6.25 이전의 주요 기록

▲ 1945. 9. 9. 미군이 서울에 입성하고 있다


▲ 1945. 9. 9. 미군들이 서울시민들의 환영 인파에 싸여 있다


▲ 1945. 9. 9. 조선총독이 총독부 홀에서 미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 1945. 10. 12. 부산항 부두에서 일본군인들이 본국으로 떠나기 전 미군들에게 철저하게 검색을 당하고 있다



▲ 1946. 1. 16.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소련측 대표가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 1947. 5. 25. 개성 인근의 38선 미군 초소, 그때만 해도 요란한 철조망은 없었다


▲ 1948. 5. 8. 다가올 5. 10 총선거를 앞두고 경찰들이 선거 방해를 염려하여 죽창을 거둬들이고 있다


▲ 1948. 5. 10.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5. 10 총선거에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 1948. 5. 10. 선거 방해 사범으로 체포된 5인, 맨 왼쪽 여인은 장택상을 암살하려다가 체포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 1948. 5. 31. 국회 개원식 날 국회 의사당 앞에서 서북청년단들이 소련 철수를 주장하는 데모를 하고 있다


▲ 1949. 3. 제5차 소련 최고회의에 참석한 김일성(오른쪽 끝)과 박헌영(김일성 바로옆 안경쓴 사람)


▲ 1949. 9. 6. 미군사고문단이 국방경비대에서 기관총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 1950. 6. 18. 6.25 한국전쟁 발발 일주일 전 의정부 북방 38 접경에서 미 국무장관 덜레스(가운데) 일행이 38선 너머 북쪽을 살피고 있다(덜레스 오른쪽 신성모 국방장관).


▲ 1950. 6. 18. 미 국무장관 덜레스 일행이 38 접경 지대를 살피고 있다.



6.25-21950년 7월 5일부터 7월 26일까지

▲ 1950. 7. 5. 한 국군 용사의 무덤.


▲ 1950. 7. 5. 국군 헌병이 인민군을 붙잡는다.


▲ 1950. 7. 6. 전란으로 잿더미가 된 평택역.


▲ 1950. 7. 7. 기마대 행렬.



▲ 1950. 7. 7. 전란 중의 천안 시가지


▲ 1950. 7. 7. 미군이 포항으로 상륙하고 있다.


▲ 1950. 7. 7.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파병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 1950. 7. 10. 조치원 부근. 미군 트럭이 북한군 폭격기가 떨어뜨린 폭탄에 불타고 있다.


▲ 1950. 7. 16. 금강교 폭파 장면.


▲ 1950. 7. 21. 불타고 있는 대전 시가지.


▲ 1950. 7. 24. 경북 예천, 평화롭던 마을에 전차가 들어오면서 온 마을이 불바다가 된다.


▲ 1950. 7. 한미 수뇌부들이 환담하고 있다(왼쪽부터 조병옥 내무장관, 신성모 국방장관, 무초 주한 미대사, 임병직 외무장관, 워커 주한 미군 사령관).


▲ 1950. 7. 26. 맥아더 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는 중, 종군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워커 장군.



625 전쟁 사망자수(자료는 인터넷에서 발췌하여 정확치 않을수도 있음)


남한 민간인의 인명피해
사망 373,599
부상 229,625
납치 84,532
피난민 240만
전쟁 미망인; 20만
전쟁고아 10만



한국군, UN군 피해
한국군
사망자 - 58,809명
부상자 : 178,632명
실종(포로) : 82,318명

UN군
사망자 - 36,991명
부상자 : 115,648명
실종(포로) - 6,994명

◈ 한국전쟁 전사/사망자통계
한국군 137,899명
미군 36,940명
영국군 1,078명
터키군 741명
오스트레일리아군 339명
캐나다군 312명
프랑스군 262명
그리스군 192명
콜롬비아군 163명
태국군 129명
이디오피아군 121명
네덜란드군 120명
필리핀군 112명
벨기에군 99명
남아프리카 공화국군 34명
뉴질랜드군 23명
노르웨이군 3명


북한 피해
민간인 사상자 : 2백만명
북한군 및 중공군 전사자 : 52만명
북한군 및 중공군 부상자 : 40만 6천 명
기타 : 90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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