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월드뮤직, 월드비트의 종족음악학적 이론
세계화와 월드뮤직, 월드비트의 종족음악학적 이론
김진우
머리말
세계화(Globalization)는 1990년대 이래로 여러 학문 분야에서 많이 논의된 주제일 만큼 20세기말에 두드러진 사회현상이며 학계 내 뿐 아니라 학계 밖에서도 다방면에서 그 영향들이 논의되어왔다. 경제, 문화, 정치적 관점에서 세계화와 관련된 논제에는 세계화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미국화(Americanization)가 미치는 영향, 국가들의 경제적 미래에 끼치는 영향, 세계정치의 흐름에 끼치는 영향 등이 있다. 그런데 세계화라는 용어가 우리 문화와 관련되어 우리나라의 대중매체 등에서 쓰일 때 사회과학에서 다루는 세계화의 개념과는 다르게 우리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린다거나 문화를 이용해 세계로 진출한다는 의미에 가깝게 쓰이는 용례가 많다. 본고에서는 주로 서구의 사회과학계에서 논의되는 세계화의 개념과 이론들을 살펴보고 세계화와 관련되어 대두되는 월드뮤직과 월드비트에 대한 개념과 관련 이론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음악학계에서 월드뮤직이나 월드비트 혹은 세계화현상에 대한 종족음악학적 연구들이 소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본고가 앞으로 우리나라 내에서 월드뮤직, 월드비트, 세계화현상과 음악 등과 관련된 논의에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본론
1. 세계화(Globalization)의 개념과 이론들
영어 단어 세계주의(globlism)와 세계화(globalization)는 1961년 웹스터 영어 사전에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사회학계에서 처음으로 논문제목에 세계화라는 단어를 사용한 사회학자 로버트슨(Roland Robert son 1992, Waters 1995: 2에서 재인용)에 의하면 세계화라는 개념은 1980년대 초와 중순에 학계에서 중요시되기 시작했다. 1994년 2월 기준으로 미국의 국회 도서관의 카탈로그에서 세계화라는 제목을 가진 책 중 1987년 이전에 출판된 것이 없다(Waters 1995: 2). 1980년대에 새로이 학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던 세계화라는 개념과 그것의 관련주제에 대한 연구 열기는 해마다 점점 늘어가는 저서의 양이 입증하듯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정의와 그와 관련된 이론들은 다양하다. 워터스는 세계화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체제에 대한 지리적 제약이 쇠퇴하고 사람들이 그들의 특수성이 쇠퇴한다는 것을 급격하게 인식하게 되며 그에 따라 다른 행동방식을 취하게 되는 사회적 과정이다.”라고 했다(Waters 1995: 5). 세계화는 유럽문화의 팽창에 의한 직접적 결과이고 자본 발달의 형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나 그렇다고 세계 곳곳이 서구화되고 자본주의적이어야 된다는 것을 암시하지는 않는다. 세계화는 많은 이론적 분석에서 기본이라고 여겨지는 세 가지 영역을 통해 살펴볼 수가 있다: 첫째로 경제는 물품과 유형의 서비스를 생산하고 교환하고 배분하고 소비하는 사회체제이다. 둘째로 정치조직은 힘의 집중과 적용을 위한 사회체제이고 마지막 문화는 의미, 믿음체계, 취향, 가치관 등을 나타내는 상징체계를 생산하고 교환하기 위한 사회체제이다(Waters 1995: 7-8). 세계화에 대한 개념과 이론을 정립하는데 있어서 주요인물로 꼽히는 로버트슨은 “세계화는 개념적으로는 세계의 압축과 세계가 하나라는 의식이 강화되는 것을 뜻한다.... 즉, 20세기에 확실한 세계적 상호의존과 세계 전체에 대한 의식이다”라고 했다(Robertson 1992: 8). 그는 이제 개별적 현상이 지역이나 국가를 넘어서 전 세계로 알려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이것은 세계화되는 여러 취향이 대중매체와 같은 것을 통해 인식되는 것 뿐 아니라 우리가 직면하는 논제들을 세계적인 용어로 재정의 하고 상대화하는 한 그렇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군사적 정치적 논제들을 ‘세계질서’로 재정의 한다든가, 시민문제를 ‘인권’으로 본다든가, 환경과 오염에 관한 문제들을 ‘지구를 살린다’라는 관점으로 본다는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세계적 의식의 대두와 물질에 대한 상호의존성은 세계가 하나의 체계로 재구성될 가능성을 높이기는 하나, 이 체계는 갈등으로 인해 분열될 수 있으며 또한 이것이 미래에 어떤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보편적 동의도 물론 없다. 세계화라는 과정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근대성과 자본주의의 출현에 앞서 일어났으며 그것은 18세기 중엽에 형성되기 시작한 민족국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 민족국가는 생존의 한 방편으로 물질적 교류 뿐 아니라 협조적 혹은 대립적 교류를 하고 국제관계를 체계화하기 시작했다(Waters 1995: 42, 45). 근대화가 세계화의 과정을 촉진시켰으며 현대사회에서 세계화의 과정이 의식의 단계로 이동되었다는 로버트슨의 이론은 그가 민족국가를 세계화 형성의 중요요소로 본다는 점에서는 사회학자 기든스(Anthony Giddens)와 비슷하나 기든스는 로버트슨과는 달리 세계화를 근대화(modernization)의 직접적 결과물로 본다.
기든스는 근대화의 중요한 역동적 요소들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시공의 거리화(distanciation or separation of time from space)인데 전근대 사회에서 시간과 공간이 한 개인이 있는 지리적 위치와 연관되어 있다면 시간과 공간의 보편화는 어떤 위치로부터이든 독립적이 되게 하였다. 시간과 공간의 독립은 광범위한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넘어서 인간 활동이 안정적으로 조직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세계화의 선결요건이다. 둘째는 사회적 관계를 지역적 맥락에서 ‘들어내어’(the lifting out) 그 관계를 시간과 공간에 걸쳐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기든스가 설명한 ‘빼내는 것’(disembedding)이다. 셋째, 근대사회는 재귀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들의 삶이 비록 기든스가 두 번째 요소의 실제 유형으로 제시한 돈과 전문성에 의해 이끌려도 사람들은 늘 이 둘에 대한 정보와 가치에 대해 살피기 때문이다. 즉, 사회적 활동은 계속적으로 정보에 의해 통제되며 정보의 분석에 의해 개정되고 재구성된다. 이상의 요소들은 상호교류의 세계적 네트워크를 가능케 할뿐만 아니라 한 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간에 더 복잡한 상호교류가 발달되도록 한다. 이런 맥락에서 기든스는 세계화란 한 지역적 사건이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방식으로 동떨어진 지역을 연결하는 세계의 사회적 관계가 강화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지역적 변화는 시공을 넘어선 사회적 연결만큼이나 세계화의 한 부분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1980년대와 1990년대 일어났던 지역 민족주의 예들은 반세계화 운동이 아닌 세계화의 한 과정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Waters 1995: 48-51). 나아가 기든스는 자신이 제시한 근대성의 네 가지 측면에서 그것이 세계화 현상에서는 어떤 체제적 방향으로 진행되는지를 설명했다. 첫째, 세계경제가 자본주의 체제로 점점 전환되어 정치 체제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는 초국가적 기업 등이 지배적이 되고 둘째, 민족국가 체제에서 개인과 시민에 대한 감시과정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셋째, 동맹체제가 세계군사질서 발달의 핵심이 되며 마지막으로 산업주의의 세계화에서는 지역산업이 교역이 늘어가는 국제노동시장에 편입된다(Waters 1995: 52).
문화사회학의 대표적 학자로 꼽히는 아파두라이(Arjun Appadurai)는 세계화를 민족국가의 자주성에 위기를 초래하는 신호로 봤다(2001). 그는 세계적 문화 흐름의 복잡성을 언급하면서, 중앙-변두리 모델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섯 가지 측면에서 세계문화의 흐름을 살필 것을 제의했다(1996). 첫째는 이민자, 관광객, 피난민 등으로 발생한 민족지형(ethnoscapes); 둘째, 다국적기업이나 정부에 의해 생산된 조직과 공장 등의 흐름으로 인한 기술지형(technoscapes); 셋째, 화폐와 주식시장에서의 돈의 흐름으로 생성된 금융지형(finance scapes); 넷째, 신문, 잡지, 텔레비전 등으로 생산되고 배분된 각종 이미지와 정보의 흐름인 미디어지형(mediascapes); 다섯째, 민주주의, 자유, 복지 등 국가 혹은 반국가 운동 사상과 관계 있는 이념지형(ideo scapes)이 그것이다.
서구의 많은 이론들이 세계화를 유럽이나 북미중심의 시각에서 논의했다면 사회학자 칭(Leo Ching)은 지역주의(regionalism)에 관한 생산적 논의의 한 예를 보여주었다. 그는 지역주의가 세계화의 구조적 결과가 아니라 그것의 중요한 구성 요소라고 주장하며 아시아에서 나타난 지역주의의 다른 측면들을 논한다. 칭은 아시아에서 일본대중문화가 지역주의의 한 예인 아시아주의(Asianism)를 생산하는 과정 중에 대중문화와 지역정체성의 담론이 어떻게 구축이 되는지 일본의 아침 드라마 오싱과 아동만화 도라에몽을 통해 살펴보았다. 또한 일본이 제작하는 위성방송 STAR TV의 논의에서 이 TV가 여러 아시아지역의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여러 종류의 아시안적 이미지가 이 매체에 의해 한데 모여져 구축이 되었다고 봤다. 그러나 여러 가지 다른 아시아의 대중문화는 하나의 지역적 정체성을 형성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아시아는 이제 반제국주의의 집단적 표현도 아니고 서구의 관점으로 본 오리엔탈리스트의 와전된 모습도 아니다. “‘아시아’는 하나의 시장이 되었고 ‘아시안적인 것’은 후기 자본주의를 통해 전 세계로 유통되는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Ching 2001: 306).
2. 월드뮤직(World Music)과 월드비트(World Beat)의 종족음악학적 이론
세계화와 음악과 관련된 연구로는 그 동안 주로 종족음악학(ethno- musicology) 학자들이 정치, 사회, 미학, 정체성 그리고 음악 산업과 대중매체와 관련된 경제학적 관점 등 다각도에서 살펴본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세계화 현상이 세계음악 산업에 끼친 영향, 강대국의 자본으로 인한 음반 산업구조의 변화, 미국이나 영국의 팝음악요소가 혼합되지 않았거나 혼합된 월드뮤직이나 월드비트 등과 같은 장르의 음악적 혹은 음악외적 분석이 그것이다.
월드뮤직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 초에 학계에서 쓰이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종족음악학이라는 학구적 용어를 대체할 수 있으면서 더 편안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종족음악학과 마찬가지로 월드뮤직은 음악이라고 하면 서구유럽의 예술음악을 떠올리는 사람들의 의식에 반대하는 역할과 서구의 음악교육기관에서 비서구 연주자들을 고용하고 비서구 음악을 공부하도록 하는 현실적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상업 다큐멘터리 음반 산업의 규모가 커졌는데 이 때는 ‘제 3세계’라는 용어로 인해 ‘원시적,’ ‘이국적,’ ‘민속적,’ ‘전통적’이라고 칭해졌던 음반들을 마케팅 할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되었을 시기이다. 이 시기는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남미에서 독립운동 혹은 반식민지 데모들이 많이 일어났던 때였고 이런 역사적 사건들이 다른 나라의 정통적 음악에 대한 시장형성이나 상업적 욕구를 자극했다. 이런 음반들은 대개 문화적 교류에 의한 전통 음악의 변화들을 담지 않았고 학자들은 이런 음반들에 음악적 정통성(authenticity)을 부여하는 입장이 되면서 이 장르의 상업적 발달에 한 몫을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종족음악학의 발달은 음악적 다원주의를 불러 일으켰으나 1980년대의 대중음악연구에 압도당하기도 했다. 20세기에서 매체음악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현상을 이론화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대중음악연구는 “정통적 전통”음악을 비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종족음악학학자들에게 경종을 올렸다. 이에 종족음악학은 대중음악연구에 영향을 받아 문화교류, 식민지, 이민, 도시화, 대중매체 등에 의해 창조된 음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제 월드뮤직은 학계에서 쓰이는 용어에서 마케팅 카테고리의 음악 장르 용어로 쓰이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 월드뮤직은 상업적으로 급성장을 하기 시작했다(Feld 2001: 190-3).
월드뮤직과 자주 혼용되는 월드비트라는 용어는 미국 텍사스에서 활동하는 밴드리더 겸 디제이인 덴 델 샌토(Dan Del Santo)가 만들었다. 그의 1982년 앨범은 월드비트라고 이름지어졌으며 이듬해 이 용어는 샌프란시스코의 음악가들에 의해 그들이 연주하는 록, 펑크 그리고 아프리카와 아프리칸-캐리비언이 혼합된 음악을 지칭하기 위한 명칭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후 월드비트는 북미나 서유럽 이외의 음악적 전통에서 발생되었거나 빌린 음악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고 심지어 미국과 유럽의 소수음악--켈틱음악, 자이데코, 불가리아 민속음악 등--도 월드비트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러한 월드비트의 세계적 유통은 “리오타르(J. F. Lyotard)1)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침에는 켈틱 하프 음악을 듣고, 오후에는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저녁에는 중동의 디스코 음악을 듣는 것이 일상사가 된 환경을 조성했다”(Goodwin and Gore 1990: 66). 월드비트가 기존의 비서구 대중음악이나 다른 음악문화의 요소를 도입한 미국이나 앵글로 대중 음악가들의 음악과 비교하여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월드비트가 음악가들, 비평가들, 기업가들에 의해 장르의 명칭으로서 만들어졌고 이제는 음악 매체 산업의 한 부분으로 체제화 되었다는 것인데 그 형태는 음악매체 안의 앵글로 아메리칸 헤게모니에 의해 구성된다. 둘째, 월드비트에서 비서구 음악의 쓰임이 더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월드비트는 자주 서구의 락이나 팝음악 형식으로 제 3세계의 고유한 선율이나 리듬 등을 쓰며 비서구 음악의 사용이 공공연히 인식되고 알려진다(Goodwin and Gore 1990: 67).
요컨대, 월드뮤직은 점점 세계의 민속적이고/이거나 전통적인 음악을 포함하는 포괄적 용어가 되어가고 있으며 월드비트라 칭하는 음악들 역시 월드뮤직에 속할 수도 있지만 월드비트는 북미나 영국의 팝이나 락 음악에 더 가까운 비유럽의 대중음악을 가리키는 데에 자주 쓰였다(Taylor 1997: 3).
테일러는 그의 저서 ꡔ세계의 팝: 세계음악, 세계시장ꡕ(Global Pop: World Music, World Markets)에서 월드뮤직을 둘러싼 담론을 논하면서 월드뮤직은 신선함, 정통성, 창조성, 정신성 등 여러 가지 요소의 측면에서 살펴 볼 수 있으며 이것들은 다 맞물려 있다고 했다. 첫째, 월드뮤직을 판매하는 전략 중 두드러진 점은 이것의 다양성과 신선함이 강조된다는 데 있으며 서구의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체제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음악과 음악가라는 것이 강조된다. 또한 많은 청취자들은 비주류의 음악을 찾는데 광고주들은 이런 청취자들의 욕구에 충족시킬 수 있는 음악으로 월드뮤직을 부각시킨다(Taylor 1997: 19).
둘째, 테일러는 정통성의 개념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는데 1) “(예술음악)에서의 역사적 정통성이나 월드뮤직에서 문화적/민족지학적 정통성” 2) “한 개인의 위치 지움을 인종화되고 민족화되고, 신분이 낮고, 전근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 3) 트릴링(Lionel Trilling)과 테일러(Charles Taylor)가 얘기했던 “진정한 자아에 대한 진실성과 충성”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에는 본질적이거나 본질화 되고, 사실적이고, 실질적인 정수(精髓)에 대한 관념이 담겨 있다. 트릴링과 테일러에게 있어서 이 정수는 근대적이고, 부르주아적이고, 개인적이며, 음악에 있어서는 본래의 오염되지 않는 방법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한 개인에 대한 위치의 경우는 다양하며 그 위치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과 구성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서구에서는 비서구음악의 “원주민”에게 단 하나의 위치, 그것도 서구가 부여하고자 하는 위치만을 부여한다. 많은 경우에 원주민은 전근대적이고 오염되지 않았으며 그들의 음악도 늘 변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지어지며 하이브리드(hybrid)라는 말은 “원주민”의 음악에서 생긴 변화를 지칭하는 것에 쓰이게 된다. 이는 논란이 많았던 그레이스랜드(Graceland, 1986) 음반의 음악가 폴 사이먼의 코멘트에서도 암시되었듯이 자본주의 구조에서는 정통성의 논의와 관계없이 서양문화는 순수하면서 동시에 혼합된 것일 수 있다는 것으로 인정되나 다른 문화의 경우는 순수한 것으로 혹은 그렇지 않는 것으로 규정된다(Taylor 1997: 21-2). 서구 자본주의의 월드뮤직 제작에 있어서 대두되는 정통성과 관련된 또 다른 측면들 중 하나는 영적인 면인데 소비자들은 정통적인 영성을 비서구 음악에서 찾으려 한다. 음악의 출처에 대한 주제 역시 정통성을 거론하는데 자주 등장하며 소비자들은 월드뮤직에 대해 이 음악이 오랜 시간을 초월한 순수한 것이라는 점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이것이 그들이 사는 서구의 찰나적이고 인위적이고 부패한 세상과는 다른 점이라 생각한다. 즉,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고 인위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 갈망하며 월드뮤직에 접근하게 된다(Taylor 1997: 23-8).
펠드(Steven Feld)는 세계화현상과 관련된 음악연구에 많은 관심을 보인 대표적인 학자 중 하나인데 그는 월드뮤직을 두고 “성공한 산업화의 주요한 지표”라고 했다(2001: 190). 펠드는 월드뮤직과 월드비트에서 생산된 정도가 다른 역동성들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작곡가 섀퍼(Murray Schafer)가 만든 “스키조포니아”(schizophonia)라는 용어와 인류학자 베이트슨(Gregory Bateson)이 만든 “스키즈모젠시스” (schismogensis)라는 용어를 빌렸다. 전자는 원래의 출처에서 소리를 분리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것은 분리되는 과정 뿐 아니라 복사물의 상태와 그것과 관련된 정통성에 대한 논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도록 돕는다. 구체적으로 대중음악산업에서 기술 및 경제와 관계있는 음반 산업의 상황에서 특히 유용하다. 후자는 축적되는 상호교류와 반응으로 생산된 차별의 패턴을 뜻하는데 글로벌 뮤직에서 이것이 몇 가지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음악소유권 문제에서 나타나는 지배와 종속의 패턴 그리고 음악적 스타일의 관점에서 세계화와 관련되어 자주 언급되는 동일화(homogenization)와 이질화(heterogenization) 패턴이 그것이다(Feld 1994b: 258-65, 269-70).
월드뮤직과 월드비트는 저항과 적응, 헤게모니와 고립 등과 같은 반대되는 개념을 수반한 논제, 초국가적 대중문화에서 상업화된 타자, 이국적이고 친밀한 것 사이의 모호한 경계, 그리고 지역과 세계와 연관된 관념들을 대두케 한다. 월드비트는 특히 새로운 포스트모던적인 의미의 정통성을 주장한다는 의미에서 월드뮤직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월드비트에서의 정통성은 혼합 그 자체를 의미하며 명확히 섞이고 혼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혼합 안에는 실제적으로 불평등이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즉, 월드비트는 그것이 설사 다른 음악문화의 영향에 의해 창작되었다 하더라도 그 음악을 실제로 판매하는 것은 팝스타들의 지위나 상업적 역할 그리고 주요 음반 회사들로의 손쉬운 접근의 가능성이다(Feld 1994b: 266-267). 이것은 “어떻게 음악 소유권과 저작권에 대한 법이 재정적 힘과 커뮤니케이션 산업의 문맥 안에서, 기록된 음악과 구전으로 전해진 음악간의 불균형한 힘을 어떻게 체제적으로 재생산하는지”에 관한 담론과 연관이 있는 문제이다(Feld 1994b: 268-269).
자슬린 질보(Jocelyn Guilbault)는 협소한 의미의 월드뮤직(소수인종집단이나 개발도상국과 연관 있고 지역적 음악특징을 세계의 주류음악장르와 결합하고 선진국의 시장에 도달했고 1980년대에 나타난 대중음악)을 소재로 세계와 지역(the global and local)의 역동성을 논하며 월드뮤직이 작은 개발도상국가에서 지역이라는 것을 재정의 하는데 기여했다고 했다. 지역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지역음악은 음악체제를 이용할 뿐만 아니라 지배적 문화의 기술과 자원을 이용하기도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체제를 조정하고 흡수하기 위해 지배적 문화는 월드뮤직과 같은 음악 레벨을 만들어 여러 지역의 음악을 한 분류 안에 넣음으로써 여러 지역의 음악적 차이를 근소하게 하고 “타자”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있는 힘을 강화한다. 비록 많은 월드뮤직이 선진국의 대중음악산업의 가치를 견고하게 하나 월드뮤직은 선진국의 대중 음악가들이 지역음악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였고 그들에게 새로운 음악세계를 개척하는 원동력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문화 교류가 증가하면서 세계적 체제와 지역적 체제는 역동적으로 변하고 다양한 지배체제의 역할이 약해지기도 하고 지역체제가 부각되고 강해지기도 한다. 월드뮤직은 또한 지역문화를 재배치하는 것에 기여하기도 했고 월드뮤직이 세계에서 인식되어지는 것 뿐 아니라 세계의 경제와 권력에 직접 참여하여 세계 동향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한다(Guilbault 1993).
리비 거로팰로(Reebee Garofalo)는 질보(Guilbault)의 생각을 발전시켜 지배적 체제에 대한 지역의 반응에 대해 논했다. 월드뮤직과 월드비트의 출현은 시장경제에서 기업들의 새로운 시장 개척과 세계문화형성을 가능케 한 테크놀로지로부터 기인됐다고 할 수 있는데 세계의 음악 흐름은 대개 강대국에서 약소국으로, 지배적 문화에서 변두리 문화로, 선진국(특히, 미국)에서 후진국으로 흐르는 것으로 언급되어 왔었다. 그는 문화제국주의 이론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비판하며, 지배세력에 대항하는 지역저항의 내부적 역동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런 역동성은 대중음악이 영화나 비디오와 같은 다른 대중문화보다 사회적 관계가 더 복잡하게 나타난다는 면에서 대중음악의 예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각 지역의 다국적 음반사의 경우 이들은 지사의 시설활용을 경제적으로 하기 위해 지역음악의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이런 생산시설의 활용은 그 지역의 소매상이나 음악클럽의 사업 발달에 도움을 준다. 또한 문화적으로 세계의 팝 음악과 그 지역의 고유한 음악 간에 교류가 일어나게 되는데 예를 들어, 여러 지역에 도입되었던 락은 그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결합하여 연주되었다. 그러므로 개발도상국의 문화가 선진국의 대중음악에 의해 인위적이고 정통성 없는 서양의 문화에 의해 오염된다는 관념은 반드시 옳다고 볼 수 없으며 지역 체제는 지배 체제에 대하여 지역의 다양성으로 문화의 동질화에 대항한다고 할 수 있다(Garofalo 1993).
질보와 거로팰로가 동일화와 이질화의 갈등에 역점을 두고 논했다면 얼만(Veit Erlmann)은 음악적 세계화는 동질화와 이질화를 다 받아들이며 반대되는 이 두 개념은 상호보완적이며 새로 등장하는 세계음악 미학의 중요한 요소들이라고 했다. 세계음악 미학의 중심 카테고리 중 하나는 혼합이나 이 혼합은 종합적으로 새 방향으로 향하는 시도를 나타내지 않고 다양성이 인정된다(1993: 7-8). “월드 뮤직은 세계를 상상하는 것의 새로운 미학적 형태이며, 전 세계의 사회를 특징짓는 문화적 정체성과 공간을 전체적으로 재구성하고 현재의 역사적 순간을 포착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이 관점은 여러 종류의 월드뮤직을 국가나 인종의 차이를 표현하는 것, 혹은 서구 헤게모니에 대한 반항의 표현으로 해석하는 입장과는 다르다(Erlmann 1996: 468).
맺음말
위에서 살펴 본 세계화, 월드뮤직, 월드비트와 관련된 이론들은 음악이 단순히 청각적 즐거움이나 감성적 만족을 주는 예술 형태가 아닌 증가하는 물질, 정보, 인간의 교류 속에서 자본주의 시장체제의 원리에 따라 급격히 산업화, 상품화되면서 사회, 경제, 정치적인 문제들을 담은 사회적 생산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대개 서구의 학자들에 의해 논의된 월드뮤직과 월드비트에서 나타난 제반 담론들은 부정적인 시각과 긍정적인 시각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음반 산업에서의 자본 집중과 경쟁은 덜 예술적이고 더 상업적이고 판매효과가 좋은 음악을 생산한다고 보며 월드뮤직이 민족성을 상업화하는 것에 공조한다고 본다. 또한 이 시각의 학자들은 음악적 정통성과 전통성을 보호하고자 하며 세계화로 인한 문화적 동질화나 문화적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생긴 토착화를 살피며 세계화로 인한 음악적 이질화의 손실을 살펴본다. 후자는 지역 음악인들이 팝 음악을 활용하는 점을 강조하고, 고정되고 본질화 된 정체성에 대한 거부로 퓨전음악을 창작하는 것을 강한 저항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는 또한 오락산업에서 지역과 지배적 체제간의 문화적 재정적 동등성의 실현 가능성을 논하기도 하며 세계화 현상을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현상으로 간주하여 전통에 대한 손실이 궁극적으로는 창의성에 의해 극복될 것이라 논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학계에서는 여러 문화의 전통 혹은 민속음악을 지칭하는 광의의 월드뮤직의 관점에서 다른 나라의 음악문화를 연구한 논문은 다수 있으나 세계화의 논제들과 맞물려 제기되는 월드뮤직, 월드비트에 관한 논의는 아직 음악학계에서 관심이 적은 편이다. 최근에 출판된 신현준의 『World Music 속으로』와 서남준의 ꡔ월드 뮤직ꡕ은 필자가 알기로는 대중 음악적 월드뮤직을 주제로 한 첫 출판물이다. 비록 학술서가 아니고 일반대중을 겨냥한 것들이기는 하나 저자들은 구체적인 월드뮤직 음반들을 예로 들어 음악해설을 하고 각각의 음반에 관계된 정치, 사회, 문화적 논제들을 다루었다.
음악학계에서 대중음악에 대한 적은 학술적 관심으로 아직은 많은 연구논문들이 나오고 있지는 않은데 본고에서 살펴본 대중음악과 관련된 월드뮤직에 관한 종족음악학적 이론들이 세계화를 다루는 음악연구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아가 이 이론들이 우리나라의 문화현상을 설명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고 어떻게 적용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차츰 조성되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박길성
1996 『세계화: 자본과 문화의 구조변동』. 서울: 사회비평사.
박미경
2002 “세계음악연구와 교육의 기반조성연구,” 『음악과 문화 』제 6호. 대구: 세계음악학회, 9-34.
서남준
2003 ꡔ월드뮤직ꡕ 서울: 대원사
신현준
2002 『글로벌, 로컬, 한국의 음악 산업』. 서울: 한나래.
2003 『World Music 속으로』. 서울: 웅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