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글

그때 그시절 똥장군을 아시나요^!^

대칸 2024. 7. 26. 00:21

   

똥장군

 

     모두가 어렵던 그때 그시절.
     비료살 돈도 없고. 비료가 엄첨 비싸고 귀하던시절. 농사짓는 농촌에서는 어느집을
     막론하고 똥장군이 있었지요. 참외구덩이.호박구덩이.밭고랑.논두렁 등은 이 똥장군
     으로 칙간의 똥을 퍼다가 뿌리고 그위를 흙으로 살짝덮구 농사들을 지었 었지요.

 

시골집
시골 측간(화장실)모습
시골측간(화장실)모습
시골 칙간간 모습(똥장군.소맷장군(오줌통).깔대기,지게)

사라진 시골칙간과 똥장군 소맷장군(오줌장군)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장군 전성시대라 할만큼 장군이 없는곳이 없었다.
시골마을의 경우 거의 집집마다 장군이 집한켠에 떡 버티고 있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장군이라함은 별을 달고 수천,수만명의 부하를 호령하는 군대의 장군이 아니다.
거름용 똥오줌을 논밭으로 퍼나르는 일명 똥장군과 소맷장군이다.
소맷장군은 오줌을 담아 나르는 오줌장군을 이르는 지리산 주변 시골에서 불려진 명칭이다.

요즈음은 사람의 똥오줌을 거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나이드신 늙은 농부들이 요강에 실례한 소변을
집안 텃밭 상추밭 정도에 뿌려 주는게 고작이다. 이처럼 사람의 인분,똥오줌을 거름으로 사용하지 않게 된것은
늙은 농부들이 똥장군,소맷장군을 짊어 질 수 없게 된데도 이유가 있지만 직접적인 이유는 일손이 부족한 상태에서
화학비료를 사용하는게 손쉽고 작물 생육 효과가 빠르다는 점,그리고 더 중요한것은 농가가 대부분 수세식 화장실이 딸린
개량주택으로 바뀌면서 본채와 따로 떨어져 있는 측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의 똥오줌이 거름으로서의 효용가치를 잃어 버린 요즈음과 달리 화학비료 대신 퇴비와 두엄등을 거름으로
만들어 쓰던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의 똥오줌은 아주 요긴한 거름이 되어 밭작물의 먹거리가 되었다.
당시 사람의 똥오줌을 거름으로 이용하는데는 세가지 형태가 있었다. 첫째는 아주 일반적인 형태로 측간에서 누운
똥오줌을 재나 왕겨와 섞어 썩혀 두엄으로 만들어 쓰는 것이고 둘째는 돼지먹이로 주어 돼지가 재소화시켜 배설한
똥오줌이 돼지우리에 넣어준 짚과 풀로 범벅이 되었을때 끌어내 두엄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형태다.
마지막으로 인분과 오줌형태로 모아 그대로 밭이나 과수원에 거름으로 뿌리는 것등 세가지다.  

 

*화장실을 뒷간이라고 불렀던 정겨운 옛추억이 있었죠 ^^

 큰 장독을 땅에 묻거나 구덩이를 파서 대변시 사용^^

 화장실은 집밖 구석진곳에 집으로 엉기성기 엮어서 등을 구부리고 들어가 볼일보도록^^

 60년때 초까지만해도 종이가 귀하던 시절이라 집푸라기를 부드럽게 하여 사용 ^^

매년 가을 추수를 한후 겨울이 오기전에 지붕위에 볏집을 새로희 교체 보강하여 지붕이 바람에 날라가지않고

장마에도 비가 스며들지 않게 하기 위한 보강작업.

새끼를 꼬아 짚을 엮어 준비한

 이엉으로 초가지붕을 잇는

개초 작업이 끝난 후, 

 

이엉이 날아가지 않도록

끝을 단단히 묶어줍니다

새끼 - 볏짚으로 꼬아 줄처럼 만든 것

이엉 - 지붕에 덮기 위해 짚을 엮어 만든 것

개초 - 이엉으로 지붕을 임

 

이엉으로 지붕을 다 덮은 후

용마름을 지붕위에 얹어주면

새 지붕이 완성됩니다.

용마름 - 초가의 지붕마루에 덮는

'ㅅ'자형으로 엮은 이엉

새마을 노래-박정희 작사,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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